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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려 온 글에서] '에드몬드 힐러리'경을 추모하며 ....

꼭두쇠- 2013. 6. 3. 11:17

 

에드몬드 힐러리경을 추모하며

(60년전, 에베레스트 최초 등반)

 


(에드먼드 힐러리에게 처음으로 등정을 허락한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8,848m)의 위용. 
오른쪽 봉우리가 로체(8,516m)

 

세계의 유명한 등반가 힐러리 경.

 

히말라야 최고봉인 에레베스트(8.848M)등정에 세계 최초의 등반에 성공한  힐러리...
"산이 거기 있으니까 오른다" 는 그 유명한 말을 남기고...
88세로, 오전 11시모국인 뉴질랜드 오클랜드병원에서 숨졌다...

 

우리나라에도 에레베스트 등정에 성공한 ..허용호,엄홍길,박영석등이 있고....
등정은 혰으나 하산길 크레파스에 ....실족사한 고상돈,지연옥(여자)등....있다

왜!굳이 그위험한 산을 정복하려 하는가에 대한 그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산이 그들을 부른다는 것"이였다.....히말라야에는 14좌의 봉우리가 있고
(여기서 좌란 (8,000M)이상을 말함.)

힐러리옹은 험난한 수직빙벽 (높이12M)을 올라 에레베스트 산꼭대기에 오른 후
"우리가 저자식을 넘어뜨렸다 "일성을 토함....

 

무한한 겸손

힐러리는 1975년 자서전 '모험 없이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Nothing Venture, Nothing Win)'를 발간한 뒤 가진 인터뷰에서,
"모험은 나처럼 평범한 자질을 가진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가이드였던 노르게이와 자신 중
누가 먼저 에베레스트 정상을 밟았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선
오랫동안 "우리가 함께 올랐다"고만 했다.

 

노르게이가 사망(1986년)한 지 13년 뒤인 1999년 출간한
회고록 '정상에서'를 통해서야,
"내가 먼저 발을 디뎠고 노르게이가 곧바로 합류했다"고 밝혔을 뿐이다

 

존 헌트가 이끄는 영국 에베레스트 원정대에서 다른 대원들이 두차례
실패한후
그가 정상공격조에 기회가 주어져 등반에 성공함으로써
영국 에리자베스2세 여왕으로 부터 기사(騎士)작위를 받았다.

 

정상에서 영국대원들 몰래 가슴에 넣어 두었던 고국 뉴질랜드 국기를
꺼내 묻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그는 뉴질랜드의 국가적 영웅이 됐고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모험가들중 하나로 환호를 받으며
그의 초상은 잡지 표지부터 우표에, 1982년 5달러 지페에 넣어져
살아있는 가장 유명한 남성들중의 하나가 되었다.

 

힐러리경은 고산등반 이외에도 트랙터로 남극탐험에 나섰고
인도 갠지스강을 제트보트로 거슬러 올라가는등 다양한 탐험을 시도했다.

◆ 박애주의의 실천

 

  1967년 “히말라야 트러스트”라는 재단을 만든뒤 네팔을 120여차례 방문하며
3개의 병원, 13개의 진료소, 30여개의 학교를 세우고 도로 교량
활주로를 건설하는
등 세르파를 돕는 사업에 전력을 경주했던 박애주의자
였다.

 

  재산은 재혼한 부인과 함께 사는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비닷가가 내려다 보이는
작은 2층집이 전부였지만 매년 25만달러 이상의 기부금을 모아
세르파족을 돕는데
썼다. 
그의 첫부인과 딸은 1975년 히말라야에서 봉사활동을 하던중 비행기 추락사고로
숨졌다. 그런 비극에도 그의 선행은 계속 되었다.

 

  그는 2004년2월 남극점 탐험을 마치고 돌아오던 한국의 대표적 탐험가
박영석(45세 골드윈코리아 이사)씨 일행과
난적도 있었고 작년 가을까지
매년 한두차례 만남을 가져오며 격려해 주었었다.

 

  “모험은 평범한 능력을 지닌 평범한 사람이 할수있는 것이다.
바로 내가 그렇다. 꿈을 기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힐러리경이 1999년 자서전 “정상으로 부터의 조망. View from the summit"
에서
보통사람들에게 항상 꿈을 강조했던 선구자의 말이다.  

  장례식은 뉴질랜드 국가장으로 1월22일 치러지는데, 그에게 영광을 안겨준 산에는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않아 고향 오클랜드앞 바다에
유골을 뿌려달라고 유언했다.

 

  힐러리는 세게최고봉을 최초로 등반한 산악인으로 보다는, 진정한 겸손과 관용
그리고 용기라는 이름으로 살다간 영웅으로 그 이름이 길이 기억될
것이다.
우리 모두 힐러리경의 명복을 빌자. 

 

(출처: daum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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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글 2>

 

지난 11일, 88세의 에드먼드 힐러리경이 별세했다는 신문엔,
그의 별세 소식과 눈덮힌 먼 산을 배경으로 텐트 앞에 마주 앉아 있는
두 사내의 모습을 담은 사진도 함께 실렸다. 서양인 힐러리경의 젊은 날의
모습으로 마주앉은 키작은 동양인이 바로 '텐징 노르가이'이다.

오래전 힐러리경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를 읽다가 내가 정작 감동을 받았던 것
은 힐러리가 아니라, 그의 등정을 안내하고 도왔던 네팔 원주민(세르파라고
부른다) 텐징 노르가이였다.

네팔 사람들은 아직도 세계 최초의 최고봉 등정자를 노르가이로 확신하고 있
다. 그도 그럴 것이 힐러리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를 때 앞에 서서 길을 안
내한 사람이 바로 노르가이인 것이다. 정상을 코앞에 두었을 때, 정상 한 발
직전 상황에 먼저 도착한 사람이 누굴까? 물론 노르가이였다. 이런 정황을
미루어 네팔 사람들은 노르가이를 최초 등반자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한 발 직전에 멈춰선 노르가이는 뒤에 오는 힐러리를 기다렸다.
그에게 정상을 밟는 첫 발을 내딛도록 배려하였다
.

물론 힐러리가 정상에 선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준 사람도 노르가이다. 그후 세상
사람들은 힐러리를 기억하게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난 후부터 난 노르가이를
더 주목하게 되었다.

영광의 자리에 나를 앉히고 싶은 욕심이 누군들 없을까? 더욱이 그런 절호의
기회가 왔다면...
그러나 그런 기회가 와도 그 자리를 주님께 돌릴 줄 아는 사람.
신앙의 노르가이 아닐까?

 

(출처 : daum카페 '기적이 있는 교회 목회칼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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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기사를 조잡하게 편집했다....
과연 누가 처음 정상을 밟았을까?
그러나 글을 읽다보면 그것은 정말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것을 느낄것이다.
서로를 위하는 두사람의 위대한 겸손과 신뢰야 말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처음 정복한 것보다 더한 감동이 아닐까...

 

자료출처 : http://blog.daum.net/hansooah/763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