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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잠부침 잠부침 잠잠부부침은 강상규어지구요.”

꼭두쇠- 2014. 3. 24. 11:30

 

  어릴 때에 외삼촌께서 들려 주셔서 귀에 익은 이야기 속의 한시를 옮겨 본다..
  나도 이젠 늙어서 외삼촌의 나이가 되었지만 기억 속에서 생생하게 맴도는 한시...
  인터넷의 고마움과 이 시를 다시 뇌리에서 불러 일으켜 준 필자께 감사를 드린다.

 

  제   목 :

           “잠부침 잠부침 잠잠부부침(潛浮沈 潛浮沈 潛潛浮浮沈)은

                                             강상규어지구(江上窺魚之鳩)요.”
           “비상하 비상하 비비상상하(飛上下 飛上下 飛飛上上下)는 
                                             산간탐화지접(山間探花之蝶)이로고~"


 

  옛날에 어느 땐동 중국에서 사신이 나온다 그래. 그런 걸 조정에서 미리 알았지. 중국서 사신이 나오만(면) 아주 조선을 업수이 여기고 구찮게 군단 말이래. 나라에서는 이늠을 대접하느라 대신들이 일을 못해. 그리이(그러니) 이늠 사신이 안 나오고 도로 중국으로 드갔부만(들어가버리면) 좋지. 중국서 조선으로 나올라만(나오려면) 배를 타고 압록강을 건네야 되는데, 강을 건네기 전에 요놈을 배에서 고만 돌려보내는게 상수라.

중국 사신이란 놈이 아주 문장인데, 딴 일로 오는게 아이라, ‘조선에도 문장이 있나?’ 또 ‘조선에도 인재가 있나?’ 염탐하러 나오는게래. 그르이 조정에서는 이늠을 상대할 만한 문장을 뱃사공으로 내보내가주 기를 꺾어 놔야, 조선에 넘어와서 행패를 못 부린단 말이지. 말하자문 문장이 누구누구고 뭐, 누가 글이 좋고 뭐, 그래 모도 의논을 했어. 그래 공론이 벌어졌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 누가 중국 문장을 상대해가주고 제압을 하겠노 말이지. 그래 누구를 보내야 상대를 해낼 지 의견이 분분한데, 성이 차씨고 호가 오산(五山)이란 사람이 자진해서 나섰어. 자기가 뱃사공 노릇을 하겠다고 나선 거야.

이 사람은 눈이 한 쪽이 찌울딱한게 외모는 시원찮지만 글 재주는 있었던 모양이래. 사실은 글재주가 문제가 아니라 배짱이 더 문젠데, 글깨나 한다는 문장들도 중국 사신을 두렵게 여기니까 아무도 나설 사람이 없지. 차오산이는 배짱이 두둑한 사람이라.

명나라 사신이 조선 문장하고 대결할려고 건너오는데, 차오산이가 일부러 압록강 가서 뱃사공 노릇을 하지 않았겠어? 사신이 배를 타고 이래 사공을 보더니, 뱃사공 눈이 하나 흿그떡한 걸 알고 희롱을 하그덩.
“오탁정장목(烏啄亭長目)이로군!” 거 옛날에는 뱃사공을 정장’이라고 했어.
‘까마귀가 뱃사공 눈을 쪼아 먹었부렀군!’ 그런단 말이지. 애꾸눈을 한 뱃사공을 놀리는 말이그덩.

차오산이 배를 젓다가 그넘 사신을 힐끗 보니깐 이 자식은 코가 약간 삐뚤어졌더래.
“풍취상사비(風吹上使鼻)라!” ‘바람이 사신의 코를 비뚤게 불었네!’ 그러고 화답을 한단 말이지.

이늠이 가만 들어보이 가당찮그덩. 애꾸눈을 희롱했다가 코 삐뚠 걸 들켰단 말이야. ‘아차!’ 그러고 있는데, 어디서 피리부는 소리가 들리그덩. 그러니깐 사신이 하는 말이, “취적고죽가(吹笛枯竹歌)라!”
‘피리를 부니깐 마른 대가 노래를 하드라!’ 그러그덩. 피리가 그게 마른 대나무지. 글귀가 그럴듯 하그덩.

마침 어디서 또 북을 치더래. 그러니깐 차오산이는 북소리를 듣고서, “격고우피명(擊鼓牛皮鳴)이라!”
‘북을 치니깐 쇠가죽이 울더라.’이래 대꾸를 했다. 대가 꼭 됐단 말이지. 압록강 복판에 오니깐드루 그놈의 오리들이 괴기 잡어 먹을라구 물 속에 자멱질을 하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가 그러니깐, 아 이 대국 사신이 뭐라고 하는고 하니,

“잠부침 잠부침 잠잠부부침(潛浮沈 潛浮沈 潛潛浮浮沈) 강상규어지구(江上窺魚之鳩)요.”
‘잠부침, 잠겼다가 떴다가 잠겼다, 잠부침, 또 잠겼다가 떴다가 잠겼다, 잠잠부부침, 들어가고 들어가고 떴다 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말하자면 강 위에서 고기를 엿보는 오리더라!’ 이 말이라.

그래 가만히 보니깐 나비가 나는데 이 놈의 나비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이러그던. 그래 차오산이가,
“비상하 비상하 비비상상하(飛上下 飛上下 飛飛上上下) 산간탐화지접(山間探花之蝶)이더라.”
‘날라가다가 올라가고 내려가고 또 날라가고, …… 산간에 꽃을 탐하는 나비더라.’ 카그덩. 어디 흠잡을 데가 없어. 글귀가 꼭 맞단 말이래. 중국 사신이 가만 생각하니, 보고 듣고 하는 것 가주고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천위일월성신국(天爲日月星辰國)이요.” ‘하늘은 해와 달과 성신의 나라요’ 그랬어.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달렸으니, 일월성신 나라라 그 말이야.
그러니깐 차오산이 금방 되받아서, “지재강산초목거(地載江山草木車)라.”
‘땅은 강산과 초목을 싣는 수레가 됐더라!’
그래 화답을 했단 말이야. 그러니깐 그 사신이 기겁을 하구서,
‘저 뱃사공이 저럴 적이면 다른 놈들은 더 말할 것두 없다구!’ 그러고는 도루 중국으로 건네갔다는 그런 사실도 있어.

나라를 태평하게 하는 이야기꾼 ‘안평국’
이 이야기는 경기도 여주읍 상리에서 15년 전에 서대석 교수가 수집한 것이다. 당시에 여든세 살이나 되는 안평국(安平國) 할아버지가 방바닥에 손가락으로 한시를 직접 써가며 들려준 이야기이다. 나라를 태평하게 한다는 이야기꾼의 이름에 걸맞게, 우리나라를 여러 모로 괴롭히는 중국 사신들을 문장과 기지로 상대하여 떳떳하게 제압하는 이야기를 즐겨 했다. 이 할아버지는 여주보통학교를 졸업했고 자유당 시절에 읍의원에 선출되어 2대를 계속해서 읍의원 노릇을 하였으며, 현재는 여주읍 상리 경로당 일을 관장하고 있는 마을 유지이다.

젊었을 때에는 큰 상회 주인에게 고용되어 상업에 종사하기도 하고, 서울 원각사에서 공연하는 신극 구경을 하고 와서 마을 아주머니들을 모아놓고 신극 흉내를 내어 좌중을 웃기기도 하였다. 마을 어른들은 신극을 퍼뜨린 소문을 듣고서 ‘잡놈’이라고 역정을 냈다고 한다. 하는 일이 상업이어서 토박이 농사꾼들보다 신문명을 만날 기회가 많았으며 또 그의 열린 생각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83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이야기를 남달리 즐겨했다. 신극을 흉내내어 마을 사람들에게 소개할 정도로 총기도 남달랐다. 한 번 듣고 본 것은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고 자부하였다. 위 이야기에서도 드러나듯이 어려운 한시를 주고 받는 내용이지만 막힘없이 조리있게 이야기를 구연했다. 경로당에서 아무도 이야기판에 끼여들지 않은 채 혼자 60편의 이야기를 내리 할 정도이다.

그는 이야기꾼으로서 두 가지 경향성을 다 갖추었다. 여주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읍의원을 두 차례나 지낼 정도로 지역사회에서 배운 자의 몫을 담당하는 한편, 마을 어른들이 잡놈으로 지칭할 만큼 예사사람들의 정서를 적극 옹호하는 경향도 있다. 그의 이야기 목록 가운데 인조반정이라든가 세종대왕릉?이완대장?강릉부사?명의 허준?신립장군?토정 이지함?유척기?이자겸?남사고?홍윤필 등 역사적 인물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한편, 바보 남편이나 바보 신랑 이야기에서 고시레 유래, 양반 욕보인 이야기, 심술쟁이 아우, 원두표 이야기, 중국 사신을 상대한 떡보 이야기 등 예사사람들의 삶과 슬기를 다룬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자연히 중국 사신의 횡포를 대응한 이야기도, 앞의 이야기처럼 차오산과 같은 문장이 상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떡보와 같이 이름없는 무식꾼이 상대한 이야기도 하였다. 안평국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라를 평안하게 하기 위해서 중국의 부당한 핍박에 저항한 내용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두루 한 셈이다.

큰 나라 중국과 작은 나라 조선
어느 이야기든 이야기의 시작은 중국 사신의 부당한 횡포를 전제로하고 출발한다. 중국 사신이 조선으로 나오면 조정이 괴롭다는 인식이나, 중국 사신은 으레 조선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는 인식이 이야기 시작의 대전제이다. 중국 사신을 탁월한 문장이 상대하여 막아내든, 무식한 떡보가 상대하여 기를 꺾어놓든, 중국 사신을 대적하여 승리하는 것이 이야기의 최종 목표이다. 중국을 이른바 대국으로 섬기면서도 중국 사신을 반갑게 맞이했다는 이야기는 아예 없다. 왜 그럴까.

중국은 대국이고 조선은 소국이어서 그렇기만 할까. 힘 센 놈은 힘이 약한 놈을 괴롭히게 마련이듯이, 열강의 나라는 으레 약소국을 괴롭히게 마련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논리로, 대국 사신이 소국에 오면 소국은 괴롭다는 인식은 너무 기계적이다. 힘의 강약이 곧 선악의 관계인 것처럼 단순 논리로 문제를 인식하고, 강자는 나쁘고 약자는 선하다는 고정관념에 빠질 위험이 있다. 강하기 때문에 악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계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곧 강자의 악을 합리화시켜주는 동시에, 약하기 때문에 선할 수밖에 없다는 선입견은 약자를 근거없이 미화시키는 오류에 이를 수 있다. 힘의 강약과 행위의 선악은 별개의 문제이다.

대국과 소국이 호혜평등하게 선린관계를 맺는다면 둘다 선의 관계에 놓일 수 있다. 어느 한 쪽을 추켜세울 수도 깎아내릴 수도 없다. 그야말로 민주적인 외교 관계이다. 이와 달리, 대국이 소국을 위하여 경제적으로 원조하고 군사적으로 동맹을 맺어 지원해주며 정치적으로 독립성을 인정해 준다면, 소국은 이러한 도움에 힘입어서 나라의 안정을 다지고 번영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대국이 가까이 할수록 소국으로서는 반갑고 미덥다. 대국의 사신이 자주 올수록 나라에 득이 되고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대국은 소국의 섬김을 받아도 좋을 만큼 든든한 우방국이 된다. 이를 두고 사대주의라고 한다면 어떤가. 도와주는 나라를 받들고 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힘에 눌려서 마지못해 큰 나라로 받드는 것이 아니라, 우정어린 도움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서 큰 나라에 섬김의 예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 만일 이것까지 부정한다면 헛된 자존심이 아닐까.

그러나 대국이 나라의 힘을 믿고 소국에 대하여 경제적으로 수탈하고 군사적으로 횡포를 부리며 정치적으로 부당한 간섭을 꾀하며, 문화적으로 종속화를 의도한다면 이는 곧 식민지 지배나 다름없다. 이 때의 대국과 소국은 사실상의 적대 관계에 놓이게 된다. 적어도 소국이 대국의 힘을 교활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뜻에서 의도적으로 조성된 상황이 아니라면, 이러한 대국과 소국의 관계는 선악의 관계로 포착해도 좋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소국에서 제 먼저 그러한 관계를 원하며 대국을 끌어들인 경우에는 오히려 소국의 식민지 근성이 더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소국이라고 해서 대국에 대하여 항상 옳고 바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국 사신이 나오기 전에 막아야
이야기의 내용으로 볼 때, 중국과 조선의 관계는 대국과 소국으로서 상하관계만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는데, 어느 이야기나 한결같이 중국 사신은 조선 정부를 굴복시키려고 하거나, 아니면 조선에 뛰어난 인재가 나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관계야 어떠했든 이야기를 전승하는 우리 민중들의 생각은 중국 사신을 적대시하고 있는 셈이다. 한 마디로, 조선의 번영을 여러 모로 훼방하면서, 조선의 국력을 약화시킴으로써 항상 조선을 중국의 속국으로 묶어두고자 하는 것이 중국 사신들의 중요 임무라는 인식이다. 자연히 사신은 조선의 사정을 이리저리 염탐하고 조정의 대신들에게 귀찮게 굴며 군림하는 인물로 간주되고 있다.

조정에서도 같은 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 사신을 일찌감치 돌려보내는 것이 나라에 이롭다는 판단을 하고, 뱃사공으로 가장하여 중국 사신을 상대할 인물을 물색했던 것이다. 조정의 대신들로서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외교 성과를 올리는 외교 전략이 중국 사신이 건너오는 것을 사전에 막는 일이다. 그러나 중국 사신이 만만하지 않은 존재라, 스스로 나서서 막아보겠다는 인재가 없다. 글 재주뿐만 아니라 배짱이 있어야 하는데, 대국 사신에 미리부터 주눅이 들었던지 글 재주 있는 사람은 적지 않아도 배짱 좋게 나서는 사람이 없다. 글 하는 선비가 천박하게 뱃사공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명분론에 빠져 있기도 하고, 괜히 나섰다가 일을 감당하지 못하면 경만 칠 터인데, 그런 위태롭고 귀찮은 일을 왜 하는가 하는 보신주의도 한몫을 한 셈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나라를 위하여 몸을 일으키고 글 솜씨도 발휘해 보겠다는 모험심 같은 것은 아예 기대할 수 없다.

조정의 신하들이 의견을 모으지 못하고 있을 때, 시골에 묻혀 사는 차오산이라는 인물이 자청하여 나섰다. 조정의 벼슬아치도 아니고 이름난 문장도 아니었다. 다만 중국 사신을 한번 상대해보겠다는 자신감과 모험심이 뛰어난 인물이었을 따름이다. 글재주보다 배짱이 두둑한 인물인 셈이다. 글재주가 아무리 있은들, 그리고 명성이 대단한 문장이라 한들, 긴요할 때 쓰이지 않는 글재주와 명성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한갓 핑계에 머무는 명분론과 몸을 사리는 구실에 지나지 않는 체통론은 비굴한 자들의 보신용 방패에 지나지 않는다. 소시민적인 지식인들의 한계가 바로 나설 때 나서지 않는 쓸모없음, 또는 삶과 연결되지 않는 앎에 있는 것이다.

애꾸눈 사공과 코삐뚤이 중국 사신
차오산이라는 인물은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다. 호와 성만 오산과 차씨로 알려져 있다. 관념적인 앎에 매몰되어 있는 선비가 아니라 실천적인 삶을 살아가는 선비이다. 따라서 나라 일이라면 뱃사공도 마다 하지 않고 자진해서 궂은 일을 맡아나선 것이다. 공교롭게도 차오산은 눈이 한쪽 ‘찌울딱’하다. 애꾸눈인 셈이다. 나라 일인데 애꾸눈이면 어떠랴. 두 눈 멀쩡한 채 행세하고 있는 조정의 대신들보다 오히려 더 당당하다. 마침내 뱃사공 노릇을 하며 중국 사신을 맞이하여 압록강을 건너고 있는 중이다. 어떤 식으로든 조선 사람들을 해코지할 작정을 하고 있는 사신이 사공의 애꾸눈을 보고 그냥 지나칠 리가 없다.

“까마귀가 뱃사공의 눈을 쪼아먹었부렀군!”
하고 뱃사공의 애꾸눈을 탈잡아 조롱하기 시작하였다. 요즘 같았으면 장애자협의회에서 장애자를 모욕했다고 항의하고 나서면 이를 해명하느라 진땀깨나 빼겠지만, ? 아니 감히 이따위 발언은 할 수도 없었겠지만 ? 당시만 하더라도 장애자의 인권은 아예 무시되었던 터라, 상대방을 모욕하는 비유로 곧잘 장애자가 거론되곤 하였다. 차오산이 당하고만 있을 까닭이 없다. ‘그럼 너의 이목구비는 과연 반듯한가?’ 하고 찬찬히 뜯어보니, 사신의 코가 삐뚤었다.

“바람이 불어 사신의 코가 삐뚤어졌네!”
하고 반격을 하였다. ‘남의 외모를 나무라는 네놈의 외모는 또 어떤가.’ 기껏 코 삐둘이에 지나지 않는다. 눈이야 둘씩이니 하나가 시원찮아도 다른 하나가 감당할 수 있다. 활을 쏘거나 총을 겨냥할 때는 애써 한쪽 눈을 감아야 정확한 조준이 가능하다. 그어놓은 줄이 바른가, 또는 다듬어 놓은 재목이 굽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확인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럴 때 애꾸눈은 굳이 한쪽 눈을 감는 수고를 하지 않아도 좋다. 배를 젓는 사공의 눈도 정확한 뱃길을 찾아가는 데 애꾸눈이 도움이 되었으면 되었지 그리 문제될 일은 아니다. 그러므로 굳이 변명이 필요없다. 애꾸눈임을 당당하게 인정하자. 아니 애꾸눈의 장점을 살리자.

일본의 어느 정객이 선거유세를 하면서 자기 적수인 후보가 애꾸눈인 것을 탈잡아 공격을 했다.
“두 눈으로 국제 정세를 보아도 제대로 보지 못할 터인데, 애꾸눈이 어떻게 세계 정세를 바로 볼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과연 애꾸눈에게 나라의 운명을 믿고 맡겨도 좋겠소 여러분!” 하고 외쳐서 유권자의 큰 박수를 받았다. 뒤이어 단상에 오른 애꾸눈 후보가 점잖게 말문을 열었다.

“아무개 후보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지 말거라. 당신은 두 눈으로 보아도 국제 정세를 잘 보지 못하지만, 나는 한 눈으로 보니까 세계 정세가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보인다네! 자-, 유권자 여러분! 일목요연하게 세계정세를 포착하고 있는 이 사람에게 정치를 맡기겠소? 아니면 두 눈 뜨고도 국제 정세를 제대로 못본다고 자인하는 후보에게 정치를 맡기겠소?!”
유권자들의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고, 이 유세 덕분에 애꾸눈 후보가 절대적 지지를 받아 당선되었음은 물론이다.

마른 대나무가 노래를 불러
애꾸눈의 결함을 재치있게 미화시킨 일화이다. 그러나 코 비뚤이는 사정이 다르다. 눈과 달리 코는 둘이 아니라 하나뿐이다.그러니 하나밖에 없는 코가 삐뚤다면 만사가 다 삐뚤 것이 아닌가. ‘코가 크면 뭣도 크다’는 식의 옛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바로 서야 할 코가 바로 서지 않았다면, 다른 것도 바로 설 까닭이 없다. 긍지 높은 삶을 두고 흔히 ‘콧대 높은 삶’이라고 하는데, 그 콧대가 비뚤어졌으니 그 삶 또한 비뚤게 마련이다. 따라서 중국 사신은 사공의 애꾸눈을 탈잡아 희롱하려다가 자기 콧대 비뚠 것만 허물 잡히게 된 셈이다.

사신이 생각해 보니, 망신을 자처한 셈이다. 그래도 글을 아는 문장인지라 자기 반성이 앞섰다. 그래, 사내 대장부가 남의 외모를 가지고 탈잡는 것도 당당하지 못한데, 하물며 문자까지 써서 글재주를 뽐내고자 했으니 선비로서 체면도 서지 않는다. 글재주를 허튼 곳에 발휘한 셈이다. 마침 어디선가 피리 소리가 들린다. 즉각 글 한귀를 지어 읊었다.

“취적고죽가(吹笛枯竹歌)라!” ‘피리를 부니까 마른 대가 노래를 하는구나!’ 제법 그럴 듯하다. 피리에 쓰는 대나무는 이미 생명을 잃은지 오래여서 바짝 말라 있는 상태이다. 그런 대나무가 노래한다니, 대나무로서는 죽었지만 피리로서는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서 구성지게 노래를 부른다는 말이다. 문장가다운 표현이다. 이제 차오산을 한갓 뱃사공으로 보지 않고 시인으로 상대한 것이다.

차오산이 질세라 즉각 화답을 한다. 마침 어디서 북소리가 들리는 것을 놓치지 않고,
“격고우피명(擊鼓牛皮鳴)이라!” ‘북을 치니까 쇠가죽이 울더라.’ 하며 대꾸를 했다.

피리가 마른 대나무라면 북은 쇠가죽이다. 피리가 노래를 부른다면 북은 소울움을 운다. 화답하는 시로서 대응이 적절하다. 사신이 재치 있는 문장으로 공격을 했지만 뱃사공의 순발력 있는 화답이 이를 무색하게 만들고 만 것이다. 구성진 풍악 소리를 듣고 글시합을 벌였으니, 이제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고서 글시합을 벌여야 할 판이다. 마침 배가 압록강 가운데 이르니 오리들이 물 속을 들락날락거리며 자멱질을 하는 것이 재미있다. 이를 놓칠세라, 오리의 자멱질 하는 모습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잠부침 잠부침 잠잠부부침(潛浮沈 潛浮沈 潛潛浮浮沈) 강상규어지구(江上窺魚之鳩)요.”
‘잠겼다 떴다, 잠겼다 떴다, 잠기고 잠겼다가 다시 뜨고 떴는데, 이는 강 위에서 고기를 엿보는 오리더라.’ 5언절구에서 3?3?5언과 6언절구로 큰 변화를 보이며, 오리가 물 속에 거꾸로 머리를 처박았다가 다시 몸을 일으키며 자멱질하는 모습을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실제 상황을 보는 듯한 회화적 느낌을 준다. 정적인 경관 묘사가 아니라, 동영상을 통해 나타내는 것처럼 오리의 움직이는 모습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다.

이제 차오산 차례다. 마침 나비가 공중을 오르락 내리락 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눈에 잡혔다.
“비상하 비상하 비비상상하(飛上下 飛上下 飛飛上上下) 산간탐화지접(山間探花之蝶)이더라.”
‘날아서 오르락 내리락, 날아서 오르락 내리락, 날고 날아서 다시 오르고 또 올랐다가 내려오네, 이는 산간에서 꽃을 탐하는 나비로구나!’ 물 위에 떠서 자멱질하는 오리에 대응하여, 공중을 날며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나비의 노니는 형상을 리듬감있게 읊은 것이다. 나비의 나는 모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중국사신으로선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꼭 맞아 떨어지는 글귀이다.

땅은 강산과 초목을 실은 수레
음악소리를 읊든, 또는 오리의 노니는 모습을 읊든 사공의 글솜씨를 제압할 수 없다. 중국 사신은 다른 양식의 글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즉물적인 묘사의 문장

 

자료출처 : http://limjh.andong.net/Re_Board/BoardView.asp?Page=1&BoardNo=24&DB=imjaehae_ibagu&FindMethod=&FindValue=&Opinion=&Opinion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