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디아나 존스/최후의성전'의 한 장면
판타지동화 속에서나 등장할법한 이 곳은 물론 실제 존재하며, 요르단(Jordan)이 국보 1호로 지정해놓은 '페트라(Petra)'라는 고대 도시의 일부입니다. 1985년 12월 6일 유네스코(UNESCO)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며 근래에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통운영자 추가 편집)
페트라 유적에는 500여개의 무덤을 포함해 800여개의 유적이 산재해있다. 방대한 규모를 자랑하는 페트라답게 볼거리도 많은 편. 페트라 유적은 시크 The Siq부터 알 카즈네 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를 거쳐 페트라 시티 센터 Petra City Center→알 데이르 Al-Deir(수도원 The Monastery)까지 일직선으로 길과 계단을 통해 연결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표소부터 끝(알 데이르 Al-Deir :수도원 The Monastery)까지 걸어가는 데만 2시간 이상이 걸리는 규모. 더군다나 출입구가 하나이기 때문에 갔던 길을 매번 돌아와야 한다.
게릴라 웹진에서는 페트라 유적 볼거리는 페트라 유적은 시크 The Siq부터 알 카즈네 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까지, 페트라 시티 Petra City에서 알-데이르 Al-Deir(수도원 The Monastery)까지, 알-마드바 Al-Madbah(=제물을 바치는 언덕 High Place Of The Sacrifice) 그리고 하이킹 정보로 구분해 싣는다.
시크 The Siq로 향하는 길이란 뜻의 밥 아스-시크는 유적 매표소를 지나서 시크까지 이어지는 약 800m의 길이다. 입장권을 확인하는 철문을 들어서면 자갈이 깔린 흙먼지 길이 바로 밥 아스-시크 Bab As-Siq. 한쪽은 말과 마차가 지나는 길이고, 한쪽은 사람들이 걸어 다니는 길로 구분된다. 밥 아스-시크는 페트라 내부가 어떨 것인가를 예감할 수 있는 곳으로 길 양 옆으로 흙색의 하얀 바위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 밥 아스-시크 Bab As-Siq(좌), 시크 입구에 해당하는 댐 The Dam(우)
검표소에서 5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오른쪽 바위산에 진 블록이 보인다. 1세기 경 나바테아인(Nabataeans)들에 의해 만들어진 6~8m 높이의 커다란 블록. 정확한 기능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나바테아인들의 무덤이거나 그들이 섬기던 두샤라 Dushara(=나바테아인들에게 가장 추앙받던 태양의 신으로 원시시대부터 세상의 불빛으로 여겨졌다. 더불어 창조자의 역할도 수행했다) 신을 위해 만든 것으로 여겨진다. 신은 이곳에서 페트라를 유지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물이 공급되는 것을 감시했다고 했다.
△ 진 블록 Djin Blocks(좌), 오벨리스크 무덤 & 밥 아스-시크 트리크리니움(우)
진 블록에서 시크 방향으로 내려가다 왼쪽에 있는 무덤으로 페트라 유적에서 처음으로 대하게되는 주요한 볼거리다. 오벨리스크 무덤과 압 아스-시크 트리크리니움은 상단과 하단으로 붙어있어 하나의 건축물처럼 보이기 십상. 하지만 두 건축물은 시간을 두고 완성된 전혀 다른 건물이다. 상단을 구성하는 것은 오벨리스크 무덤 Obelisk Tomb으로 이집트 신전에서 볼 수 있는 오벨리스크 4개가 조각되어 있다. 오벨리스크 사이에는 침식으로 희미해진 사람 조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5명의 무덤으로 사용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하단을 구성하는 것은 밥 아스-시크 트리크리니움 Bab As-Siq Triclinium. 트리크리니움는 고대 로마에서 쓰던 3면에 눕는 안락의자가 붙은 식탁인 트리크리니움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내부는 3개의 작은 방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죽은 사람들을 기리기 위해 매년 향연을 펼치던 곳이다.
시크 입구에 만들어진 댐은 와디 무사 Wadi Musa(=페트라 유적을 흐르는 계곡)에서 페트라 내부로 물이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것. AD 50년경에 나바테아인들이 최초 만들었으며 현재도 같은 장소에 댐이 만들어져 있다. 1963년에 새로이 만들어진 댐 상단에 해당하는 다리가 시크 The Siq의 입구 역할을 하고 있다. 댐 오른쪽의 협곡은 와디 무트림 Wadi Muthlim으로 페트라 유적 내부의 왕실 무덤 Royal Tombs까지 90분 정도 걸리는 하이킹 루트가 연결된다.
페트라가 더욱 신비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 있는 이유는 시크가 있기 때문이다. 협곡이라는 뜻의 시크는 1.2Km 길이로 이상스럽게 생긴 바위들의 모양새와 색채가 감탄을 자아내게 만든다.
시크는 물에 의한 침식 작용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거대한 바위 블록이 지각변동에 의해 분리되면서 생긴 것으로 시간이 흐르며 물과 바람에 의해 바위표면이 부드럽게 변모했다. 시크는 넓이가 2m 정도로 좁으며 가장 넓은 부분도 5m 밖에 안 된다. 바위산들은 80~150m 정도의 높이로 협곡 사이로 비추는 태양의 광선과 바위에 물결 모양의 붉은 사암과 어울려 신비함을 자아낸다.
△ 시크를 걸어들어갈 때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그 끝은 보물창고가 기다리고 있다.
시크 입구는 본래 아치 장식이 만들어져있었으나 1896년 부서졌으며 받침대 일부만이 흔적으로 남아있다. 또한 시크를 통해 페트라에 필요한 물을 조달하던 수로를 바위를 잘라 만들었다. 시크 왼쪽 면을 따라 수로가 연결되어 있으며 오른쪽 면에 테라코타로 형태로 만든 수로가 일부 남아있다.
시크는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좁고 어두워진다. 길이 더 이상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시크의 끝자락으로 한줄기 선명한 빛이 들어오며 그 끝에는 페트라뿐만 아니라 요르단 전체를 대표하는 알-카즈네 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가 당신 앞에 모습을 들어 낼 것이다.
시크는 페트라의 입구이자 출구 역할을 한다. 페트라로 들어가는 유일한 곳이라 하루 두 번씩 이곳을 지나치게 된다. 많은 여행자들은 시크를 걸어 들어가며 너무도 흥분되어 뜻도 모를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지르곤 한다.
페트라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아마도 ‘페트라에는 알-카즈네 Al-Khazneh(보물창고 The Treasury)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 그만큼 알-카즈네는 페트라를 대표하는 건물로 보존 상태나 완성도가 뛰어나 보는 순간 모든 이들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곳이다.
△ 볼 때마다 너무 아름다워 발길을 오래 머물 게 한다.
알-카즈네는 시크가 끝나는 곳에 있다. 깊은 계곡의 절벽을 파서 만든 43m 높이의 건축물로 2천년이란 세월동안 변함없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알-카즈네는 보물창고(The Treasury)라는 뜻의 아랍어. 보물창고라는 이름은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들에게 전해지던 카즈넷 알-파라운 Khaznet al-Faraoun(파라오의 보물창고)이라는 이름이 알려지면서 연유한 것. 고대 이집트의 파리오가 이스라엘인들을 쫒던 중에 이곳에 보물을 숨겨뒀다는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도록 알-카즈네 맨 꼭대기에 보물을 숨겨놨다는 믿음은 베두인들로 하여금 알-카즈네의 분쇄하고 보물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보물창고가 사실이 아닌 이상 딱딱한 암반층으로 구성된 납골당 내부로 연결되는 문을 발견해 낼 수는 없었다.
△ 빛에 따란 다른 색을 드리우는 알-카즈네(좌), 알-카즈네 내부(우)
알-카즈네는 BC 100년경 헬레니즘 양식으로 만들어진 나바테아 왕, 아레타스 3세 Aretas Ⅲ의 무덤이다. 높이 43m, 길이 30m 크기로 사암을 파서 만든 알-카즈네는 6개의 원형 기둥이 받치고 있는 2층 구조로 되어있다. 건물의 맨 위쪽에는 (현재는 파손된) 독수리 조각 두 개가 좌우에 장식되어 있다(독수리는 나바테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남성 신인 두샤라 Dushara를 상징한다).
2층 중앙은 원형 형태로 만든 토로스 tholos에는 네바테아인들의 가장 신성시 하는 여신, 알-우자 Al-Uzza(=풍요의 여신)가 조각되어 있다. 토로스 옆으로 우묵히 들어간 부분(=상단부의 두세 번째 기둥 사이와 네다섯 번째 기둥 사이)에는 날개달린 빅토리아 여신이 조각되어 있다. 1층의 6개 기둥 중앙은 알-카즈네 입구에 해당하며, 좌우에는 말을 타고 있는 제우스 신의 쌍둥이 아들인 카스토르 Castor와 폴룩스 Pollux가 조각되어 있다.
알-카즈네 내부로 들어가면 영화 인디아나 존스 3- 최후의 성전 Indiana Jones and the Last Crusade에서 봤던 장면과는 사뭇 다르다. 알-카즈네 내부는 아무런 치장도 없는 매우 단순한 사각형의 방으로 되어있고, 뒤쪽에는 작은 방의 입구가 있으나 출입이 통제된다. 알-카즈네가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태양의 빛이 온전히 외관을 비추는 오전 9시부터 11시 사이로 붉은 핑크 장미 빛을 띤다.
알-카즈네를 지나 이어지는 협곡은 바깥 시크 Outer Siq가 연결된다. 페트라 입구를 장식하던 시크 The Siq에 비해 넓은 편이다. 바깥 시크는 페트라 유적에 산재한 500여개의 무덤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대하게 된다. 페트라에 만들어진 나바테아인들의 무덤은 아시리아 Assyria에서 영향을 받은 박공단 장식이 특징으로 무덤의 상단부 정면을 수평방향으로 조각해 두었다.
그 중 가장 눈여겨 볼만한 곳은 우나이수 무덤 Tombs of Unayshu(=No. 813)으로 라벨 2세 Rabel Ⅱ의 왕비를 수행하던 대신 중의 한 명의 무덤이다. 붉은 사암 암벽을 파서 만든 전형적인 페트라 양식의 무덤으로 박공단 장식이 아름답다. 그 외에도 70여개의 나베테아인 무덤이 산재해있다. 각 무덤마다 번호가 매겨져있다. 인상적인 곳은 70번(NO. 70) 무덤으로 지구라트(=고대 바빌로니아·앗시리아의 피라미드 형태의 신전) 양식으로 만들었다.
△ 바깥 시크를 벗어나오면 와디 무사를 끼고 넓다란 길이 이어진다.
바깥 시크는 협곡이 점점 넓어지면서 노천극장 The Theater을 지나 페트라 시티 센터 Petra City Center로 향하는 길 Street of Facades이 나타난다.
로마 제국의 원형극장과 비슷한 형태의 노천극장은 주변에 카페와 기념품 가게, 화장실이 위치해 페트라 유적 내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 좋은 장소다(노천극장의 원형계단도 휴식 장소로서 좋다.)
페트라 노천극장은 (약 2천 년 전인) 1세기 경 나바테안인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전체적인 양식은 로마제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바위를 깎아서 만든 것이 특징이다. 붉은 사암의 바위를 통째로 잘라서 깎아 만들어 주변 풍경과 어울려 웅장함을 더한다.
노천극장은 본래 3,000명 정도를 수용할 규모였으나, 로마 제국이 페트라를 점령한 이후 AD 106년에 노천극장을 확대해 (암만의 노천극장보다 더 큰 규모인) 8,500명을 수용할 수 있게 됐다.
△ 동네 아이들에게는 놀이터, 여행자들에게는 휴식처
노천극장을 지나면 와디 무사 Wadi Musa 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걸어가면 페트라 시티 센터 Petra City Center의 주요 유적들이 나오고, 와디 무사를 건너 노천극장 맞은편의 바위산을 끼고 돌면 왕실 무덤 Royal Tombs이 나온다.
노천극장을 250m 정도 지나 오른쪽에 있는 왕실 무덤은 페트라에서 알-카즈네와 더불어 인상적인 곳으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제벨 알-쿱타 Jebel Al-Khubtha 산의 오른쪽 절벽에 만든 무덤들로 무덤 자체의 경관을 포함해 계단을 통해 무덤까지 올라갔을 때 보여지는 페트라 풍경이 환상적이다.
붉은 사암 바위들의 결들이 선명하게 보이는데 특히 늦은 오후시간이면 절벽 전체가 깊고 선명한 붉은 핑크 장밋빛을 들어낸다. 하지만 겨울을 제외한 무더운 계절에는 그늘이 드리운 오전시간이 왕실 무덤을 관람하기 좋은 시간이다. 사진을 찍어야한다면 단연코 늦은 오후 시간에 왕실 무덤을 바라봐야한다.
△ 늦은 오후 시간의 왕실 무덤(좌), 납골당 무덤에서 바라 본 페트라 풍경(우)
왕실 무덤 중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무덤으로 거대한 외관 때문에 쉽게 눈에 띈다. 바위를 파서 만든 전형적인 나바테아인 무덤으로 2중 아치 천장을 조각했는데, 중앙 무덤의 크기만 18m x 20m로 왕실 무덤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건축 시기는 AD 70년으로 추정되며 마리초스 2세 Malichos Ⅱ(AD 40~70) 또는 아레타스 4세 Aretas Ⅳ(BC 8~AD 40)를 위해 만들어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납골당 무덤이라는 명칭은 박공벽 꼭대기 부분에서 발견된 거대한 유골단지 때문. 4개의 둥근 기둥이 벽면에 양각되어 있고 기둥 사이에 3개의 무덤이 만들어져 있다. 3개의 무덤 중에 중앙에 있는 것이 왕을 위한 것으로 여겨지며 돌덩이로 입구가 봉쇄된 것이 특징이다.
납골당 무덤은 지리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탓에 5세기 중반에는 비잔틴 성당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그 증거로 중앙의 내부 방 뒷면 벽 왼쪽 코너에 그리스 명각이 희미하게 보인다. 계단을 통해 무덤 입구까지 올라갈 수 있다. 무덤 앞의 널따란 앞마당에 서면 페트라 일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 납골당 무덤 외부와 내부
납골당 무덤을 지나 위쪽으로 계속 올라가면 실크 무덤 The Silk Tomb, 코린트 무덤 The Corinthian Tomb, 왕궁 무덤 The Palace Tomb이 차례대로 나온다.
실크 무덤 The Silk Tomb은 지진으로 인해 피해를 입어 세 개의 무덤 중에 가장 빈약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붉은 핑크색 바위에 새겨진 핑크색, 하얀색, 노란색 결들이 물결치듯 선명하다.
코린트 무덤 The Corinthian Tomb은 그리스의 헬레니즘과 나바테아 양식이 혼합되어있다. 기둥이 조각된 아래층은 나바테아 양식, 알-카즈네의 상단과 비슷하게 토로스 tholos(=중앙의 원형 조각)를 만든 위층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나바테아 왕의 무덤으로 만들어졌으나 박공벽이 훼손을 파손되면서 완성도는 떨어지는 편이다. 무덤의 이름은 고대 그리스의 코린트의 수도이름에서 연유했으며 박공벽에 조각됐던 꽃들은 침식으로 인해 남아있지 않다.
△ 왕궁 무덤(좌), 섹스티우스 플로렌티누스 무덤(우)
왕궁 무덤 The Palace Tomb은 로마나 그리스 왕궁의 외관과 흡사한 조각으로 인해 ‘왕궁’이라는 이름을 얹은 곳. 절벽을 깎아 만든 무덤의 앞면이 마치 로마의 3층짜리 왕궁을 연상케 한다.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무덤 자체의 조각이 훌륭한 무덤으로 수많은 기둥과 원주가 조각되어 있다. 무덤의 정면 조각만 본다면 페트라에서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층 상단의 박공벽은 삼각형태가 중앙에, 아치 형태가 가장자리에 조각되어있다. 다른 무덤과 동일하게 내부는 커다란 방이 아무런 장식 없이 만들어져있다.
페트라에서 유일한 로마 제국의 통치자를 위해 만든 무덤. 입구 상단에 라틴어로 새겨진 명각을 통해 이곳의 주인이 아라비아를 통치했던 로마 제국의 섹스티우스 무덤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아라비아의 행정 중심지였던 보스라 Bosra 대신 페트라에 묻혔다. 무덤은 AD 126~13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왕실 무덤에서 왼쪽으로 더 걸어내려 가면 보이는 독립된 무덤으로 박공벽 상단에 고르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머리가 뱀이어서 보는 사람은 무서워 돌이 되어버렸다는 세 자매 중의 하나)의 머리가 조각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침식으로 인해 희미한 흔적만 남아있다. 다른 무덤과 달리 내부에는 무덤임을 쉽게 눈치 챌 수 있는 로쿠리 loculi(=묘)를 만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