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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 글] 걷기의 마법같은 힘을 더 살펴봅니다

꼭두쇠- 2015. 3. 23. 11:57

 

얼마 전 저는 영화 '와일드'(1월 22일 개봉, 장 마크 발레 감독) 감상을 계기로 '걷기'로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찾은 사람들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영화의 기초가 된 원작 '와일드'의 저자인 셰릴 스트레이드 뿐만 아니라 작가 파울로 코엘료와 서영은, 그리고 나는 걷는다의 저자인 베르나르 올리비에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제가 관심을 가진 것은 걷기가 어떻게 그들을 그토록 바꾸어 놓을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서론만 쓰고 마무리를 못했습니다. 한때 삶을 포기할 정도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그들이(파울로 코엘료와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자살을 시도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종교나 혹은 다른 약물의 힘이 아닌 오로지 죽기살기로 매달린 걷기의 힘으로 다시 살아갈 용기를 되찾았는지 조금 더 파헤치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걷기의 마법같은 힘을 더 살펴볼까 합니다. 


 

1. 걷기, 어두운 생각을 사라지게 하다


 

"내게 필요한 건 깨끗한 최후였다." (떠나든 머물든,올리비에 베르나름 지음)

참 비장하지 않습니까. 나이가 거의 예순이 되었을 때, 은퇴와 아내의 죽음으로 절망과 고독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던 올리비에 베르나르(77)가 한때 품었던 다짐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스스로 세상을 그렇게 하직할 결심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랬던 그가 우연히 몇년 자신이 정말 재미있게 읽었던 여행책 여정에서』(자크 라카리 에르 지음)를 떠올리고, 2300㎞의 도보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단지 걷기 위해, 뭔가 배우기 위해 떠난다기 보다는 자신의 은퇴 프로그램을 세우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걸으면 걸을수록 그는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체험을 하기 시작합니다. 나이에 대한 자신의 편협했던 생각도 떨쳐 버리면서 말이죠.

 

"나는 완벽하고 유연한 존재로 거듭나고 있었다. 근육이란 약간 자극만 하면 생겨나서, 나이하고는 상관없었다. 몸이 다시 만들어지면서 나도 다시 젊어졌다. 내 신체기관은 엔도르핀이라 부르는 그 행복의 호르몬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그건 배낭의 무게에도 불과하고 나를 거의 춤추게 만드는 자연적이고 유익한 마약 같았다."

 

마약이라니요. 아마도 이런 게 마라톤 뛰는 사람들이 달리며 경험하게 된다는 희열의 경지, 아마추어 마라토너인 세계적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도 빠져들게 한  '러너스 하이'(Runner's High)와 같은 것인가 봅니다. 그러니까 올리비에 베르나르의 그것은 '워커스 하이'( Walker's High)라 할 수 있겠네요. 걷는다는 것은 분명히 몸을 움직여 하는 일인데, 지루해보이는 그 단순하고 반복적인 몸의 움직임이 정신적 쾌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베르나르는 또 이런 말을 합니다.

 

  "걷는다는 것은 육체적이기보다 정신적 훈련임을 그때 깨달았고, 이후에도 수없이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두운 생각을 사라지게 한다. 나는 눈으로, 몸으로, 세상을 흡수했다"

 

걷는 일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걷는 일은 충분히 그럴 법한데 베르나르는 펄쩍 뜁니다. 산티아고 길에 "이제 곧 당신의 고통은 끝이 납니다"라고 쓰여진 푯말이 있다는데, 그는 이런 말뚝을 보았을 때 깊은 분노마저 느꼈다고 말합니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그 위에 오줌을 누었다고 하지요. 왜냐하면, 그의 느낌은 고통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랍니다. 그에게 걷기는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기쁨과 환희였기 때문입니다.  


 

2. 살아 있다는 감각을 일깨우다  


사실, 걷기를 이렇게 예찬한 사람은 그가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국내에서 2002년에 출간된 프랑스 사회학자  다비드 드 브르통의걷기 예찬은 '걷기'의 바이블로 통합니다. 이 책을 감명깊게 읽은 독자들이 한 둘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후에 그는느리게 걷는 즐거움도 펴냈는데, 브르통은 걷기를 단지 건강을 위한 운동으로만 보는 편협한 시각에 반대합니다. 그는, 몸의 육체적인 감각이 정신을 더 넓은 세계로 이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고 한 말은 그런 맥락입니다. 그는 걷기가 '내 몸과 만나는 시간이며, 내 정신과 영혼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최근 느리게 걷는 즐거움을 읽는 저는 그가 걷기를 감각의 예술로 언급한 대목('온몸의 감각이 열리다')이 특히 흥미로웠습니다. 걸을 때 우리는 시각뿐만 아니라 냄새와 소리, 촉감을 만끽하며  예기치 않은 차원으로 펼쳐지는 감각을 체험한다는 것입니다.

 

 "걷기는 무엇보다도 감각의 예술이다살아 있음을 열정적으로 느끼고 인간의 조건이 무엇보다도 신체 조건임을, 세상의 기쁨이 육신의 기쁨이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고 구태의연한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얻는 기쁨임을 절대 잊지 못한다." 


 

 

3.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되는 자유


걷기는 분명히 체력을 소모하는 일인데, 그 일이  큰 기쁨이 되는 것은 어떤 연유일까요. 걷기를 예찬한 프랑스의 철학자 프리데리코 그로(신기하게도, 걷기 얘기를 하다보니 프랑스인들이 연이어 출동합니다)는 그의 저서 걷기,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에서 그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걸을 때 우리는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잠시 잊고, 내 몸으로 길을 밀고 나가며 순수한 존재감을 되찾는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심지어 그는 걷기를 어린아이의 놀이에 비유합니다.

 

 "걸을 때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냥 걷기만 할 뿐이다... 걷기는 (마음의) 부담을 덜어주고 무슨 일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도록 함으로써 어린 시절의 그 영원성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걷기가 어린아이의 놀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그날의 날씨와 햇살, 나무의 크기, 푸른 하늘을 보며 감탄하는 것이 걷기다. "

 

  "여러 날, 몇 주 동안 걸을 때 우리가 결별하는 것은 단지 직업과 이웃, 사업, 습관, 근심, 걱정만이 아니다. 걷는다는 것은 우리의 몸만 필요로 한다...두 다리만 있으면, 그리고 볼 수 있는 두 눈만 있으면 충분하다. 걸어야 한다. 혼자 떠나야 한다. 산을 오르고 숲을 지나가야 한다."

 

놀랄 만한 이야기는 없습니다. 누구나 경험해봤음직한 그런 내용 아닌가요.  브르통도 느리게 걷는 즐거움에서 똑같은 얘기를 했습니다.

 

 "걷기는 정체성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켜준다...더 이상 자신의 얼굴, 이름, 개성, 사회적 지위 등을 유지할 필요가 없다. 걷기는...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압박과 사회적 그리고 개인적 책임감으로 인한 긴장을 풀어준다." 


 
 4. 걷기는 어떻게 뇌를 자극하는가

걷기가 부리는 마법의 힘에 대해 과학자들은 두뇌와 연관지으며 설명합니다.  걸을 때 지속되는 다리의 움직임이 뇌에 큰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사실 운동이 중요한 것은 단순히 신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경 세포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있어 궁극적으로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운동이 뇌 자극을 해주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그래서 많은 의사들은 노년엔 더욱 걷는 게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녀들은 연로하신 부모님께 택시비를 드리며 '힘들게 버스 타거나 걷지 마시라'고 당부하는데, 사실은 그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진심으로 부모님의 건강을 위한다면, 그분들이 스스로 걸어 다니려 하시는 것을 굳이 말리지 말라는 조언입니다.

 걸을수록 뇌가 젊어진다는 책은 일본 교토대 명예교수인 오시마 기요시(88)가 쓴 책입니다. 의학박사인 그는 두뇌에 관한 다양한 연구를 소개하며, 걷기와 뇌의 관계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많은 공헌을 했다고 합니다. 주목할 것은, 그 역시 걷기를 단순히 운동의 차원에서만 권하지는 않고, 창의적인 두뇌활동을 위해 걷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설파했다는 점입니다. 책은 손바닥 만한 크기에 아주 얇은 분량이지만, 걷기의 힘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의 논지는 분명합니다. '즐겁게 걸으면 나이가 들어도 뇌가 늙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는 뇌를 속이 꽉 찬 만두에 비유하는데, 만두소를 에워싸고 있는 만두피와 같은 게 대뇌변연계라고 설명합니다. 대뇌변연계의 가장 바깥쪽 표피는 대뇌신피질인데, 대뇌신피질이야말로 인류 진화의 결실이라고 말합니다. 생명 활동과 관련된 뇌간을 에워싸는게 대뇌변연계라면, 이것을 둘러싸고 대뇌신피질이 '사고하는 뇌'라는 것입니다. 창조적인 사고에 대뇌신피질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걸을 때 느껴지는 쾌감은 뇌간을 통과해 대뇌변연계에서 대뇌신피질에 도달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걸을 때 우리는 끊임없이 두뇌의 광범위한 부위를 계속 자극하고 단련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는 사랑을 할 때 느끼는 설렘과 걷기가 뇌의 광범위한 영역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 걷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고, 손을 흔들며 균형을 취하고, 피부로 공기의 온도를 느끼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서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런 정보가 대뇌신피질에 전달되는 것이다걷는 동안에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움직인다. 바로 이것이 걸으면 뇌 나이가 젊어지는 이유다."

 

그에 따르면, 몸을 사용하지 않으면 근육이 굳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뇌도 쓰지 않으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데, 뇌의 신경회로망을 자극하는 최고의 방법이 걷기라는 것이다.

 

"자신감, 바로 이것이 포인트다. 걷는 동안 적극적인 마음가짐과 의욕이 솟는다. 몇 시간동안 머리에 쥐가 나게 하던 수학 문제가 잠깐 동안의 산책으로 스르르 풀리는 경우가 있다. 걷기의 힘이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일종의 '쾌감 물질'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도판민이 뇌에 방출돼야 우리는 쾌감을 느끼고 의욕을 갖게 되지요.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훌륭한 경치를 접했을 때 우리는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는데, 그것은 도파민이라는 물질이 뇌 전체에 쾌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오시마 기요시 선생은 걷기야말로 도파민이 분비되기 쉬운 뇌 속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등 공신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 자신감을 잃었을 때, 몸이 찌부드드할 때, 마음에  분노가 일렁일 때, 할 일이 없을 때, 인간관계로 머릿 속이 복잡할 때 '일단 걸으라'고 조언합니다.

 

자, 어떻습니까. 셰릴 스트레이드, 파울로 코엘료, 올리비에 베르나르가 산티아고 길을 걷고 돌아와 어떻게 작가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인지 의문이 좀 풀리시나요. 한때 삶의 고단함에 기력을 잃었던 그들은 세상과, 아니 자기 자신과 맞장뜨자는 비장한 각오로 걷기에 자신을 내던진 다음 베스트셀러 작가로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걷기가 준 큰 선물임에 틀림없습니다. (누구나 다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가장 큰 선물은 작가가 되었다는 결과 그 자체보다, 그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좌절감에서 벗어난 것,  살아 있다는 희열을 충만하게 느낀 그 순간의 체험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어제 봄비가 촉촉히 내렸습니다. 겨우내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했던 추위도 저만치 물러갔습니다. 

 

이제, 우리 봄길을 함께 걸어볼까요.

책상 앞에서 컴퓨터 키보드 두드리며 떠드는 이론은 이제 그만! 저도 이번 봄엔 걷기의 마법을 온몸으로 체험해 볼까 합니다. 


(인터넷 중앙일보에서 인용함)

 

 

자료출처 : http://cafe.daum.net/way./TO8s/3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