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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오산시] 역사성 깊은 독산성과 세마대를 찾아서...

꼭두쇠- 2016. 5. 28. 19:00

2016년 05월 28일(토) 역사가 깊이 깃들인 오산 세마대를 찾는다.

수도권 전철, 1호선을 타고 오산대학 전역인 세마역에서 내려

독산성 세마대를 오르기 위해서 들머리까지 1.0km정도를 시가지(?)를 걷는다.


잘 가꾸어진 등산(산책)로를 따라서 우거진 숲을 걷는다.

특히 독산성과 세마대를 돌고 길을 잘 못 찾아 헤메였던 길..

삼남길로 이어지는 세마숲의 우거진 소나무들은 잊을 수 없을 것...



핸들폰 TRANGGLE_GPS에 나타난 기록..
윗 그림의 좌측으로는 목적외로 솦속을 헤메였던 길...


독(성)산성과 세마대의 유래를 미리 알아 본다...


경부선 철길과 병행하는 1호선 전철의 세마역...

(세마역의 역사를 알아 보는 것도 좋을 것..)


오산시 세마도 주민자차센-타 앞을 지나서..


 세롭게 뚫린 병점-수원간 도로 갓길 따라...


독산성 들머리(날머리) 작은 공터에 이른다.


들머리에 올라서 작은 산책로 처럼 다듬어진 길...


 

 이름 모를 꽃과 그 향기 속에 새들의 지저김을 들으며...


연리지 나무 앞을 지난다...




다른 곳의 연리지 처럼 한 몸을 이루진 않았지만 묘하게 생긴 연리지...


연리지 나무 앞을 지나서 양산봉으로 갈리는 갈림길까지..


갈림길에 새워 놓은 도보여행코스 알림판..


 양산봉으로 오르내리는 길..


약간의 경사진 길을 올라 양산봉의 육모정이 보이고..


 양산봉 정상 표지판과 육모정의 모습...


양산봉에서 내려다 본 동탄신도시와 우뚝 솟은 메타폴리스..


 올라 온 길을 다시 내려 가서..


숲이 우거져 그늘지고 바람이 시원스런 평탄한 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마주 보는 길을 걷는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마주하며 오가는 길손을 맞는다..


뒤돌아 본 길.. 양산봉이 저만큼 물러 나 있고..


본격적으로 보적사로 오르기 전의 쉼터에서 만난 목각상..

(제천 박달재 목각공원의 금봉이 상을 떠오르게 한다.)


산림욕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우측으로 하고...


잘 닦여진 보적사로 올라가는 직진 오르막 길..


올라가다가 뒤돌아서 양산봉을 향해서 한컷...


얼마를 오르다가 다다른 보적사 주차장... 먼저 해우소가..ㅋㅋㅋ


 세마대 모습과 독산성과 세마대지를 설명한 안내판..


보석사로 올라 가는 경사진 길...


 경사진 길을 오르니 해탈문이라 일컷는 독산성의 동문..


해탈문으로 사용하는 독산성 동문으로 들어 간다.


독산성 일주 안내판과 동문임을 표시한 안내판..


 해탈문을 들어가 보적사 입구, 뒤돌아서 해탈문 쪽을...


보적사의 경내를 두루 살펴 본다..


대웅전과 3층 석탑..


3층 석탑과 멀리 뒷쪽으로 삼성각...


달마도사 석상과 불전함..


종무소 앞을 지나서 독산성을 일주하기로 하고 전진한다..



보적사[]와 세마대()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다. 401년(백제 아신왕 10) 나라에서 창건했다고 한다. 세마산 독산성(禿) 내에 위치하며, 산성을 만들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1920년 주대식이 약사전을 헐고 현재의 대웅전을 지으면서 절 이름을 보적사()라고 고쳤다.


   1986년 부임한 주지 스님 도광()이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의 이름을 따서 '세마사()'로 개칭하였으나, 이는 사찰 내부에서 비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로 공식명칭은 보적사이다.

   1986년 도광이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웅전과 선실·요사채가 있으며,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 좌상을 비롯하여 약사불상·지장보살상 · 십육나한상 등이 있다.


    '보적사'라는 이름은 전설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설에 따르면 춘궁기에 먹을 것이 쌀 한 되 밖에 되지 않던 노부부가, 이 쌀을 부처님께 공양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부처의 은혜로 여긴 부부는 그 후로 더욱 열심히 공양하였고 여기에서 '보적사'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한편 '세마'라는 이름은 산성 안에 있는 세마대에서 유래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권율이 이 산성에서 한양으로 향하는 왜군을 막고 있었다. 조선군의 저항이 거세자 가토 기요마사]는 산성에 쌀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당시 산성에는 물이 매우 귀했으나 권율은 이를 감추기 위해 쌀로 말을 씻는 시늉을 했고, 이 광경을 멀리서 지켜본 왜장은 산성에 쌀이 무척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물러났다고 한다.


   그 뒤 말을 세워놓고 쌀로 씻은 곳을 세마대라고 불렀다. 이곳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누각이 있는데, 현판은 이승만이 쓴 것이다. 전통사찰 제 34호이며, 향토유적 제 8호로 지정되어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보적사 [寶積寺] (두산백과)


 미세먼지와 연무로 희미한 동탄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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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적사를 뒤로하고 남문이라 부르는 곳으로..


 멀리 남문터가 보이고..


정조대왕이 화성행차 길로 이용했다는 삼남길로 이어지는 남문을 지나..


남문 위치 알림판..


남문을 뒤로 하고 이젠 서문터를 향해서...


 고려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주춧돌..


 견고하게 잘 축조된 성벽을 따라서..


여기는 암문.. 적군 몰래 드나 들었다는 숨겨 놓은 들랑구....


오산시 도보여행코스(독산코스) 안내판을 지나서


저 멀리 정남면이 보이는 이곳은 서문터...


두어 구비를 휘돌아서 발걸음은 북문을 향한다..


북문이 자리했던 곳.. 이곳은 북문터...


 북문을 돌아 치성(雉城)이라고 불렀던 성벽의 모서리..


독산성을 일주하고 보적사 뒷편, 세마대로 오르는 길...


세마대는 지금 공사 중....

공사를 시작하기 전의 원모습...



네이버의 다른 사이트에서 세마대의 모습을 빌려서 본다.


세마대에서 본 양산봉의 모습...


 다시 보적사로 내려와..


해탈문을 통해서 멀리 희미한 동탄신도시를 내랴다 보고..


 향향기 그윽한 꽃길을 따라서 하산을 시작한다..


주차장에서 올라왔던길을 앞으로하고 좌측으로 역사깊은 삼남길로 접어들어..



여기에서 잠깐... 삼남길의 유래를 알아보고자 한다..


삼남대로[三南大路]와 삼남길(三南路)

 

    조선시대 6대 대로 중 한양과 충청, 전라, 경상의 삼남지방을 이었던 1,000리에 달하는 긴 길을 '삼남대로'라고 불렀습니다. 조선시대 육로교통의 중심축으로 과거를 보러가던 젊은 선비들이 이 길을 걸었고, 삼남지방의 풍부한 물산도 이 길로 오갔습니다.


    또한 이길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참배하기 위해 현륭원으로 다니던 길이며, 이순신 장군께서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던 길이고, 암행어사가 된 이몽룡이 남원으로 한걸음에 달려가던 길이기도 하고 임지왜란과 한국전쟁의 격전지 이기도 합니다.


    경기도는 과천시, 안양시, 의왕시, 수원시,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 및 (재)경기문화재단, 코오롱스포츠, (사)아름다운도보여행과 힘을 합쳐 '삼남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고증하고, 그 원형을 최대한 따르면서 고속도로 등으로 단절된 구간, 도보자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구간 등에 대해 대체로를 개척하여 역사문화탐방로인 경기도 '삼남길' 90.1KM를 새롭게 개통하였습니다.


역사의 정취에 반하고 나무 향기에 취하여 정신없이 내려오다가...

 

 

 하산하여 빠져 나가는 길을 못 찾고 그만 헤메이는 꼴이 된다..


 극기 훈련장을 지나고...


 쉼터를 지나서...


 오르막 길을 다시 기어 올라 처음 올랐던 능선을 찾아 원점으로 회귀한다..


처음에 올랐던 들머리가 이젠 날머리가 되고, 그 앞으로 전개되는 신도시...


메타폴리스를 비롯한 아파트로 가득 채워진 동탄 신도시를 보며..

수년전, 처음 개발당시와 많이도 변한 모습에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