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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고양시] 권율장군을 찾아 행주산성에 올랐습니다..

꼭두쇠- 2011. 5. 25. 17:22

 

 

2011년 04월 13일 봄이 무르익는 오후에 행주산성을 찾았습니다.

개나리가 확짝피고,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고,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마음만 먹고 찾지 못했던 곳, 오늘에야 찾는 것입니다.

 

 

행주산성(幸州山城)은 

사적 제56호.1963년 지정. 면적 347,670㎡. 정확한 축성연대와 목적은 알 수 없으며, 임진왜란 때 장군 권율(權慄)이 대첩을 이룬 싸움터이다. 1592년(선조 25) 7월 8일 이치(梨峙)에서 왜적을 격멸한 권율은, 12월 수원 독산성(禿山城)에서 다시 적을 물리친 뒤 서울 수복작전을 개시, 조방장(助防將) 조경(趙儆)과 승장 처영(處英) 등 정병 2,300명을 거느리고 한강을 건너 행주 덕양산(德陽山)에 진을 치고 서울 수복을 노렸다. 이때 왜군 총수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등의 부하 장성을 거느리고 3만여 병력으로 공격해왔다. 권율은 이들을 처절한 접전 끝에 크게 무찔렀다.
지금 산허리에 목책(木柵) 자리가 남아 있고,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출토되는 것을 보면 임진왜란 이전에도 중요한 군사기지였음을 알 수 있다. 1603년(선조 36)에 세운 행주대첩비와 1963년에 다시 세운 대첩비가 있으며, 1970년 권율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를 다시 짓고 정자와 문을 세웠다. (자료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행주산성의 주 출입문인 "대첩문"입니다.

 

입구에 행주산성의 전모를 안내하는 "안내판"도 보이고

 

권율장군 동상 앞 광장의 소나무도 보입니다.

 

권율장군 동상 옆으로 군기와 진입로가 확짝 열리고

 

지금도 호령하는 목소리가 울릴듯한 장군의 위용 : "권율장군의 동상" 이 반깁니다.

 

진입로 주변에 만개한 개나리 꽃

 

진입로 우측으로 "잔디광장"을 안내하는 안내판

 

100여명이상이 모일 수있는 잔디광광.

 

잔디광장 위편에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쉼터 안에는 행주산성과 관련있는 각종 사진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사진은 행주산성과 관련된 행사와 사계절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은 것들~~.

 

쉼터의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쉼터용 의자군...

 

정상으로 오르던 중 우측에 "토성"을 안내하는 안내판

 

토성으로 내려가는 토성 진입로

 

토성으로 오르는 계단

 

토성의 역사를 설명한 안내판

[행주산성 토성]

지금의 행주산성 성벽은 전문가가 아니면 확인이 어렵다. 경사가 급한 동쪽정상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돌아 내려간다.목책은 멸실되고 없지만. 드문드문 토성의 흔적만 볼 수 있다.내성과 외성이 있지만 외성은 구분하기 어렵다. 내성은 둘레가 1km의 작은 성이다. 산성 아래 남쪽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동남쪽은 개천이 있어 자연적인 방어역할을 했다.
지형은 평야지대에 솟은 독산이어서 서울과 맞은편 양천고성, 북쪽 고양 일대가 한눈에 관찰된다.

(자료출처:http://web2.dailian.co.kr/news/news_view.htm?page=3&code=4&gubun=menu_code&id=165501)

 

행주산성의 토성, 마치 어덕과도 같아 식별하긴 어렵지 않나 생각되어짐.

 

산성 안에 있는 "행주 기씨"  조성비

 

행주 기씨 조성비 건립에 관한 안내문

 

행주산성 축조에 관한 안내문

 

권율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장사 진입로

 

삼도(三道)와 삼문(三門)의 깊은 뜻을 해석한 안내판

 

충장사에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설명한 안내판

 

충장사의 전경과 삼도(三道), 삼문(三門) 그리고 군기가 보입니다.

 

권율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장사의 경경, 역시 삼도(三道)가 눈에 들어옵니다.

 

충장사를 관리하는 종무소

 

 

 

 본 집입로에

 좌측의 토성 길과

 진행방향으로
 정상의 충의정,  

 우측의
 대첩기념관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의 이정표

 

 

 

 

 

 

 

 

  

 

 

 

 

 

갈림길 광장의 정면에 설치된 안내판

 

대첩기념관의 모습, 소방훈련이 진행 중입니다.

 

대첩기념관의 모습, 소방훈련이 끝난 후에 다시 찾았습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역시나 봄의 전령사, 개나리가 만개되어 반겨 줍니다.

 

잘 가꾸어진 진입로가 계속 이어지고, 모퉁이를 돌아서면~~

 

우측으로 진강정으로 내려가는 계단길이 펼쳐집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진강정의 모습이 자리잡고

 

진강정에서 내려다 보이는 방화대교의 아름다운 모습이 펼쳐집니다.

[방화대교]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동과 경기도 고양시 강매동을 잇는 다리를 말하는데 총연장 2,559m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구간 중 서울특별시 입구에 건설된 다리이다. 한강을 횡단하는 다리 가운데 27번째로 건설된 최장 교량이며, 특히 중앙부 540m의 아치트러스(arch truss)교는 비행기의 이착륙을 형상화한 디자인으로 미관이 뛰어나서 남쪽의 개화산과 북쪽의 행주산성 등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만개한 개나리 꽃으로 장식한듯한 "덕양정"의 모습

 

정상입구에서 바라 본 덕양정과 멀리 한강이 강서구와 함께 보입니다.

 

덕양정에서 행주대첩비로 오르는 길, 비각이 우측으로 보입니다.

 

행주대첩비각이 역시 개나리 꽃으로 둘러쳐저 있고

 

행주대첩비각 -측면

 

행주대첩비각 -배면

 

행주대첩비의 위용이 드디어 눈앞에 펼쳐집니다.

[행주대첩비]

덕양산 정상에 우뚝 솟아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왜병을 크게 무찌른 행주대첩의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경기도민과 각계 유지들이 힘을 모아 1963년 8월에 건립한 것으로, 앞면에 새긴 큰 글씨는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쓴 것이다.
행주대첩비는 모두 3기가 있는데 최초의 초건비는 1602년(선조 35)에 건립하였고 이것이 오랜 세월에 걸쳐 심하게 마모되어 알아볼 수 없게 되자 1845년(헌종 11)에 초건비의 비문을 그대로 옮겨 적어 더 큰 규모로 중건비를 세웠다. 1963년에 건립한 대첩비는 이들과 구별하여 재건비라고 부른다.

대첩비 아래의 역사적 배경을 기록한 내용.

 

행주대첩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안내판 -1

 

행주대첩비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는 안내판 -2

 

대첩비각에서 내려다 보는 덕양정과 한강 조망

 

충의정에는 영상 교육관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충의정의 모습

 

정상에서 토성으로 바로 영결되는 오르고 내리는 길

 

행주대첩비와 비각을 한꺼번에 바라봅니다.

 

정상에서 바라 본, 한강과 건너편의 강서구 "개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방화대교 : 인청공항 고속도로

 

덕양정에서 정상을 우측으로 돌아 내려가는 길

 

토성으로 발길을 돌려 계단길을 내려가며 탐방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