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저산 오름방

[북한산] 비봉능선 따라 비봉에서 대남문까지~

꼭두쇠- 2011. 2. 6. 13:44

  2011년 01월 18일, 오늘도 영하15도를 밑도는 매서운 추위속에 다시 북한산을 찾았습니다.

오늘은 3호선 불광역2번출구에서 장미공원을 기점으로 탕춘대위문, 비봉, 사모바위를 지나

승가봉을 경유하여 문수봉을 우회하고 대남문에서 하산하여 구기동계곡으로 내려옵니다.

 

장미공원에서 탕춘대위문쪽으로 둘레길(옛성길구간)을 통과합니다.

중간에 안내판을 통하여 북한산 남쪽면의 봉우리를 볼 수 있습니다.

 

좌측으로부터 쪽두리봉(수리봉), 향로봉, 비봉이 자리하고 있고,

이어서 승가봉, 나한봉,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비봉능선이 버티고 있습니다.

 

카메라 앵글을 우측으로 돌려보니 문수봉 우측으로 보현봉도 보입니다.

사진 중간지점의 철탑이 있는 탕춘대성능선을 따라 비봉까지 올라야 합니다.

 

둘레길(옛성길구간)의 안내판을 따라서 마냥 걷다가 보면,

 

탕춘대위문입니다. 탕춘대는 조선 연산군 10년(서기1504년)에 서울 장의문(藏義門) 밖에 지은 건물로

연산군이 이곳에서 자주 연회를 베풀었다고 하며, 향로봉 아래까지 이어지는 성벽이 있습니다.

 

쪽두리봉(일명:수리봉)이 우측에 확연하게 보이고

 

다음으로 향로봉이 눈에 들어 옵니다.

 

이어서 비봉의 아름다운 모습도 눈에 들어 옵니다.

이 비봉의 유래를 보니 비(비석)가 있어서 비봉이라고 하였다고 하며
이 비의 명칭이 바로 신라 진흥왕순수비(北漢山新羅眞興王巡狩碑)라고 합니다.

 

중간 중간의 잘 설치된 안내판은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잘 안내하고

 

등산객들의 발에 다져진 눈은 매서운 추위에 돌처럼 굳어졌으며

 

비봉의 정상은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하고 우회했습니다.

정상의 신라 진흥왕 순수비는 마음 속에만 담았습니다.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유역을 영토로 편입한 뒤
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원래는 북한산 비봉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비(碑)를 보존하기 위하여 경복궁에 옮겨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비봉을 우회하여 사모바위에서 바라 본 백운대, 인수봉과 만경대의 장엄한 모습,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가운데 앞으로 노적봉이 보입니다.

 

승가봉 넘어로 나월봉, 나한봉과 문수봉이 손짓을 합니다.

 

역시 승가봉 뒤로 문수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보현봉도 보입니다.

문수봉과 보현봉 사이에 오늘의 목적지인 대남문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사모바위에서 뒤 돌아서 본 비봉, 그 오른쪽으로 향로봉이 배웅을 합니다.

 

이제 사모바위를 뒤로하고 대남문을 향하여 문수봉 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안내판이 지시하는데로 좌측 대남문쪽으로 내려서 길을 재촉합니다.

 

이별이 아위워서 뒤 돌아 본 사모바위의 모습입니다.

 

오르내리는 나무계단 위의 눈들이 다저져서 미끄럼은 더 하고

 

등산객의 발에 다져진 눈은 매서운 추위에 더 굳어져 미끄럽기만 합니다.

 

여기가 승가봉 정상으로 가는 길목인가? 바위 틈사이를 비집고 통과해야 합니다.

 

어렵게 바위틈 사이를 통과하고 뒤돌아 보았습니다.

 

승가봉 정상인가? 지난 발자취가 아쉬워 돌아본 모습.(비봉과 향로봉 그 앞으로 사모바위)

 

문수봉 북벽을 오른 쪽에 두고 만경대, 인수봉, 백운대가 눈에 들어 옵니다.

 

왼쪽의 나한봉, 오른쪽의 문수봉 정상이 보이고 그 사이 계곡에

보이질 않지만 청수동암문이 자리합니다만 오늘 그곳을 통과하여야 합니다.

 

좀더 오른 쪽으로 앵글을 돌려 보현봉을 바랍 봅니다.

 

승가봉에서 내려오는 길은 로프를 잡지 않고는 한발자욱도 뗄수가 없이 미끄럽고

 

암벽으로 굴을 형성한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은 몸집이 큰사람은 통과하기도 힘들 것 같고

 

위태로워 보이는 암능길을 통과하여야만 합니다.

 

제가 내려왔던 길을 한무리의 등산객들은 로프를 잡고 힘겹게 오르고 있습니다.

 

문수봉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위험하여 차단되어 우회하도록 합니다.

 

우회하는 북쪽 비탈길도 결코 만만하지 않은 미끄럽고 비탈진 길입니다.

 

청수동 암문으로 오르는 길은 경사도가 높아 숨을 몰아 쉬게 만들고

 

 

청수동 암문을 통과하면 좌측으로 나한봉, 나월봉, 용혈봉, 용출봉으로 이어지는 의상대 능선이 열리고, 우측으로는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으로 이어지는 북한산성이 이어집니다.

 

 

암문은 성곽에서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상 탕출구로 북한산성에는 청수동암문을 비롯한 서암문, 동암문, 백운동암문, 용암암문, 부암동암문, 가사당암문 등이 있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로부터 격전지로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한양도성을 수비 방어하고자 숙종 37년(1711)에 석성으로 수축되었다. 승려 성능이 지은 한한지에는 북한산성의 축조과정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1990년부터는 훼손된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 용암암문, 청수동암문 및 성벽 등을 보수하고 동장대를 복원하였다.

 

 

 

청수동 암문에서 대남문으로 이어지는 응달진 곳의 눈언덕과 이정표

 

문수봉 북벽으로 우회하는 길, 눈무덤을 헤치고 우회하여 대남문을 향합니다.

 

드디어 나타난 대남문의 아름다움과 성벽의 장엄함이 반겨 줍니다.

 

대남문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성벽에는 지금도 선조들의 숨소리가 들리는듯하고

 

북쪽으로 보이는 백운대와 만경대 그 사이에 보일락 말락 인수동이 고개를 내밀어 보입니다.

 

대남문 처마끝에 보현봉의 암벽들이 줄을 서서 반겨주고

 

대남문 광광 북쪽에서 바라 본 대남문의 전경입니다.

 

대남문 상단에서 내려 서면 비봉, 대성문을 가르키는 이정표.

멀리 좌측으로 백운대와 만경대가 희미하게 보입니다.

 

구기동계곡 방향에서 바라 본 대남문 전경입니다.

 

대남문에서 나오자마자 오른쪽은 문수사, 왼쪽은 장장 2.5km가 넘는 구기동계곡 하산길이 열리고

 

하산길의 오른쪽, 문수봉의 바위들은 굴러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게만 보이고

 

왼쪽 보현봉의 암능은 접근을 불허하듯 도도하게 서 있습니다.

 

한없이 이어질듯 길게만 이어지는 목제계단을 내려서

 

한참을 내려오면 문수사에서 내려오는 길과 다시 합류하게 되고

 

아이젠 없이는 움직일 수 없이 미끄러운 길을 내려옵니다.

 

이제 저 멀리서 대남문이 안녕하며 손짓하듯 배웅해 주고 있습니다.

 

문수사 합류길을 얼마쯤 지나서 오르막 고갯길을 넘으면

 

한없이 이어지는 구기동계곡길에 접어듭니다.

 

계곡을 가로 지른 하산길의 첫번째 다리입니다.

 

하산길을 미끌어지듯 또 한참을 내려옵니다.

 

계곡을 가로질러 두번째 다리가 나타납니다.

 

다리로 이어지는 계곡길도 지나 갑니다.

 

비봉과 사모바위 사이에서 승가사를 거쳐 내려오는 합류지점을 지납니다.

 

합류지점에서 구기동계곡으로 이어지는 쉼터를 넘어갑니다.

 

승가사 합류점으로 부터 첫번째 다리 "우정교"를 지나서

 

한참을 더 내려오면 두번째 다리 "귀룡교"를 만납니다.

 

세번째 다리 "버들치교"를 만납니다.

 

건너와서 뒤돌아 확인하는 "버들치교"입니다.

 

네번째 다리 "박세교"가 하산길을 안내합니다.

 

마지막으로 "만남교"를 우측으로 놓고 북한산국립공원 구기동분소를 향합니다.

 

북한산국립공원 구기분소를 지나, 아쉬운 마음으로 뒤돌아 봅니다.

 

대남문까지 2.5km, 문수사까지 2.4km, 승가사는 1.6km라는 안내판이 보입니다.

 

구기터널을 지나 불광역으로 향하는 계곡길에서 만난 이름 모를 새 한마리~

 

추위와 배고품에 떨고 있는 듯한 애처러운 새의 모습을 보면서 산행을 마감합니다.